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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지도자 생활을 마무리하는 신순호 감독

[맛있는 토크①]행복했던 30년 지도자 생활, 명지대 신순호 감독

김진건 기자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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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지도자 생활을 뒤로 하고 퇴임을 앞둔 명지대학교 신순호 감독. 뿌리 속까지 명지인이라는 자부심으로 뭉친 신 감독이 자신의 인생사를 ‘맛있는 토크’를 통해 전했다.
 
FOOD
 
평소 대회가 열리는 지역에서 식사를 하더라도 맛있는 곳을 찾아간다는 신순호 감독은 ‘맛있는 토크’를 통해 자신이 선수들과 자주 찾는 장소를 추천했다.
 
신 감독이 추천한 곳은 용인시청 근처에 위치한 ‘애플하우스’이다. 이곳은 홈메이드 파스타와 피자가 맛있는 집으로 치즈도 직접 만들어 느끼하지 않아 깔끔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신 감독은 “애플하우스가 생기자마자 지인이 추천해 처음 이곳에 왔었다. 음식도 너무 맛있고 분위기도 좋아 선수들과 자주 찾고 손님이 오셔도 여기서 식사를 즐긴다”라고 전했다. 신 감독은 장이 좋지 않아 음식을 가려먹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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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산나물을 좋아하고 돼지고기보다는 해산물을 좋아하는 신 감독은 밀가루도 즐겨 먹지 않아 2년간 끊은 적도 있다고 한다. 평소 신 감독의 지도 스타일처럼 음식에서도 철저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해외로 나가면 가끔 선수들에게 직접 요리를 해 준다는 신 감독은 “자신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선수들이 맛있게 먹는 편이다. 어머니를 통해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다. 가끔 즐거운 마음으로 요리를 한다”라고 밝은 미소로 전했다.
 
그녀는 맛뿐만 아니라 음식점을 고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분위기이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사진으로 찍어 간직하고 공유도 한다는 그녀는 맛집 블로그를 개설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자주 찾는 곳인 만큼 신 감독이 추천하는 시금치 피자, 리코타치즈 샐러드, 단호박 스파게티 등 다양한 메뉴를 주문해 본격적으로 ‘맛있는 토크’를 시작했다.
 
STORY
 
뛰어놀기 좋아했던 시골 소녀 테니스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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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감독은 어린 시절 테니스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원주에는 공립학교가 원주여중 하나가 있었는데 지역 평준화가 되면서 신 감독은 운 좋게 원주여중으로 진학하게 됐다.
 
시골에서 자란 그녀는 조금은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것과 어울리지 않게 밖에서 뛰어놀았다고 한다.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에 비해 활동성은 뛰어났다. 초등학교 때 핸드볼을 한 달 정도 배우고 경기에도 나갔었다.
 
그녀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한 달 정도 했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에 진학하니 체육 선생님이 초등학교 때 운동한 사람을 찾았고 방과 후 학생들을 남겼다. 핸드볼을 했기에 손을 들었던 나도 방과 후 남아 운동장을 뛰었는데 너무 뛰기가 싫었다. 그래서 남지 않고 집으로 갔지만 전학을 가야 할 수도 있다는 으름장에 결국 남아서 운동을 했다. 그것이 테니스와의 첫 만남이었다. 라켓을 잡게 됐고 스윙을 하기 시작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원주여중에서 테니스를 시작한 신 감독은 소년체전 2연패를 이룰 때에도 선수로 활약했다.
 
이후 원주여고에서 활약한 신 감독은 “원래 원주여중고가 전통의 강호였다. 언니들도 워낙 잘하셨다. 지금도 이소라(고양시청) 정수남(강원도청) 이진아(은퇴) 김미옥(경산시청) 등 대표 선수가 원주여고에서 세대별로 한 명씩 나와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아시안게임 3관왕…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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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 후 신순호 감독은 조흥은행에 입단했다. 지금은 대학 졸업 후 실업팀에 입단하지만 당시에는 실업팀으로 많이 입단했다. 대학팀이 많지도 않아 대학을 선택하기가 어려웠고 먼저 사회로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선수 시절 신 감독이 이뤘던 성과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대회는 단연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이다.
 
당시 신 감독은 여자복식, 혼합복식, 단체전을 모두 석권하며 3관왕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누구나 자랑할 만한 성적이었지만 그녀는 “모든 일이라는 것이 자신만의 힘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단식보다는 복식에 치중하는 편이었기에 단체전에서 단식 선수들이 잘해줘 가능했다. 또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어머니의 힘도 큰 영향을 끼쳤다. 모든 부분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과였다”라고 설명했다.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하나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전했다.
 
이러한 신순호 감독의 생각은 선수 시절뿐만 아니라 지도자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시즌이었던 올해 신 감독이 이끄는 명지대는 전국체전 9연패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이에 대해 그녀는 “명지대가 항상 뛰어난 선수들만을 보유하지는 않았었다. 어려울 때도 있었고 도저히 우승이 불가능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고 선수들도 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열심히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내가 이루었던 아시안게임은 물론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참 감격스럽다”라고 밝혔다.
 
쉽지 않았던 처음과 명지인으로서의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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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호 감독은 실업팀 생활 후 명지대에 입학해 선수 생활을 이어나갔다. 졸업을 앞둔 신 감독에게 지도자로서의 기회가 생겼다.
 
당시 대한테니스협회 부회장이자 명지대 이사장이었던 유영구 이사장의 제안으로 1989년 명지학원 관동대에서 지도자를 시작했다.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아 두려움과 막막함을 느꼈던 신순호 감독은 “원래 성격이 쑥스러움도 많고 말수도 적기 때문에 경험 삼아 2~3년 정도 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서러운 부분도 많았다. 지방에 있는 학교에다가 창단팀이다 보니 스카우트를 하기가 어려웠다. 대표팀도 경험했었기 때문에 나의 눈높이는 굉장히 높은 상태여서 더욱 그랬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다. 이사장님에게 편지를 자주 썼었는데 거기에 ‘저희는 타도 명지대를 외치면서 지금도 구슬땀을 흘립니다’라는 내용도 자주 보냈었다”라고 전했다.
 
그리고 3년 만에 신 감독의 관동대는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첫 지도자 생활이었기 때문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녀가 이토록 열심히 했던 이유는 바로 모범을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신 감독은 “여성 지도자들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에 내가 잘해야 그 뒤를 따라오는 후배들이 설 자리가 있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행히 이후 여성 감독들이 점점 생겨났고 이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1989년 관동대로 시작해 신 감독은 1997년 명지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30년의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선수들에게 강조한 것은 바로 명지인으로서의 자부심이다.
 
신 감독은 “선수들에게 선배들이 쌓은 탑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선수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 나도 감격스러워진다. 믿고 따라와 주고 성과를 내는 선수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라고 전했다.
신 감독의 이러한 신념은 선수들이 명지인이라는 이름 아래 똘똘 뭉쳐 하나가 되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녀 또한 명지인이기에 앞으로도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맛있는토크②에서 계속... 
 
글= 김진건 기자(jinkun@mediawill.com), 사진= 김범석(스튜디오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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